천명관 '고령화 가족' 책 속의 길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언제나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살았다. 적어도 나의 가족 안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들은 늘 나를 배려해줬고 무엇에서든 우선권을 주었다. 그들 덕에 나는 가족 관계 안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오함마에게 두들겨맞은 것도 어릴 떄의 이야기일 뿐, 나이가 들어서는 오히려 그가 나를 어려워했다. 순전히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줬지만 나는 고생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덕에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으며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부서져 산산조각난 뒤에도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 자신이 나를 포기한 뒤에도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pp.252~253



-술술 잘 읽히는 경쾌한 문체. 비슷하다면 이기호와 비슷한가? 그러나 나는 천명관 작가의 스타일이 좀 더 취향.
경쾌한 문체 아래 비루한 '고령화 가족' 성원들의 따스한 면면이 유장하게 흐른다. 

야마모토 후미오, '지혼식' (단편집) 책 속의 길

<원앙>
 "마미 짱은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없는 부부라고 생각하지?"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겉을 꾸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말아. 형태를 만들어놓으면 내용은 나중에 따라올지도 모르잖아.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부도 있는 거라고."

 마치 스스로를 타이르듯이 말하더니 올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 앞에서 문이 천천히 닫혔다.(  p. 103)



<마스오>
 어쩌면 슈지는 내가 느끼고 있는 만큼 지금의 생활을 행복하게 느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늘 똑같은 우리의 일상이 나와 남편에게 전혀 다른 색깔로 비춰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오싹해졌다. 어금니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남편이 진정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고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회사도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미망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민이 없을 것 같고 낙관적이고 느긋해 보이는 슈지를 남편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서웠다. 남의 집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로 무서웠다.  (pp. 159~160)



<지혼식>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었지만 두 사람 역시 그렇게 다른 인간들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토록 바랐던 생활을 손에 넣게 되자 차츰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신혼 때는 늘 서로 엉겨 붙어서 노닥거렸지만 점점 배우자인 상대에게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게 되었다. 이게 평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상대의 일과 친구 이야기를 그다지 흥미롭게 듣지 않게 되었다. 고민을 털어놔 봐야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게 되었고, 둘이 외출해도 즐겁지 않았다. 휴가를 맞추는 번거로움도 포기했다.
 
 이렇게 어긋나는 일들이 늘어난 지 꽤 오래되었다.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의 얼굴을 본다면, 이야기를 한다면, 섹스를 한다면 외롭지 않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남편은 이미 나의 일부이다.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타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pp. 266~267)

-이상 야마모토 후미오 단편집 '지혼식'에서 발췌, 김미영 역, 창해 출판사


공지영, '고등어' 책 속의 길

 "...가끔씩 방파제 멀리로 은빛 비늘을 무수히 반짝이며 고등어떼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는데. 살아있는 고등어떼를 본 일이 있니?"
 "아니."
 "그것은 환희의 빛깔이야. 짙은 초록의 등을 가진 은빛 물고기떼. 화살처럼 자유롭게 물 속을 오가는 자유의 떼들, 초록의 등을 한 탱탱한 생명체들. 서울에 와서 나는 다시 그들을 만났지. 그들은 소금에 절여져서 시장 좌판에 얹혀져 있었어, 배가 갈라지고 오장육부가 뽑혀져 나가고."
 "........"
 
 여경의 숨이 골라지고 있었다. 그도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그들은 생각할 거야. 시장의 좌판에 누워서. 나는 어쩌다 푸른 바다를 떠나서 이렇게 소금에 절여져 있을까 하고. 하지만 석쇠에 구워질 때쯤 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 나는 왜 한때 그 바닷속을, 대체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헤엄쳐 다녔을까 하고."
 
 여경은 반응이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새벽이 될 때까지 잠이 들지는 못했다.

-공지영, '고등어', 웅진출판, p.207




-후일담인데다 불륜이 얽힌 통속신파, 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386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홍, '걸프렌즈'-스물아홉 연애에 있어서의 금기 책 속의 길


 자꾸 존댓말과 반말이 섞인다.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은 것을 걸쭉한 침에 섞어 삼킨다.
 스물아홉 연애에는 나름대로의 금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연애가 결혼을 전제한 것이든 아니든 결정적인 순간까지 지켜야 할 필수적인 사안이다.

 이를테면 첫째, 가족 얘기는 삼가도록 한다. (예전에는 남자친구 가족들과 밥을 먹기도 했다. 헤어지고 나서는 남자 친구보다 가족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기가 더 어려웠다. 만약 상대가 먼저 가족 얘기를 비치면 재빨리 화제를 바꾼다. 되도록 기분이 상하지 않게 상대에 대해 칭찬이 될 만한 이야기를 선별해 둔다.)

 둘째, 싸이월드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예전에는 싸이월드에 남자 친구와 찍은 사진을 주야장천 올렸다. 헤어지고 나서는 그 사진들을 정리하느라 밤을 꼴딱 새우다가 종래에는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가급적 안 한다고 둘러대거나 만약 공개해야 할 경우 폴더를 따로 만든다. 그런 것이 귀찮으면 싸이월드를 안 하는 게 상책이다.)

 셋째, 과분한 선물은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무리를 해서라도, 카드 할부로라도 정말 어울릴 법한 멋진 선물을 사 줬다. 헤어지고 나서 나머지 할부 금액이 청구될 때마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한 증오심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아무리 마음에 드는 선물을 발견해도 20만원이 넘으면 가차 없이 단념한다. 돈에 여유가 있거든 차라리 내 선물을 사서 써 버리거나, 절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는 게 남는 거다.)

 넷째, 사생활을 침범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묘연한 통화 내용을 들으면 바로바로 추궁했다. 헤어지고 나서는 그런 나 자신이 무척이나 초라하게 느껴졌다. 만약에 상대의 행동이 미심쩍거든 비슷한 행동을 하면 그만이다.)

 이런 규칙을 정해 놓은 건 바로 나를 위해서다. 잠시 잠깐의 고통은 참아야 한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어서가 아니다. 훗날 떠안게 될 막중한 책임이나 고통 따위를 진즉에 없애는 거다.

 나는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하면 살얼음 낀 육수에 푹 담긴 면발 신세였다. 면발은 살얼음 낀 육수가 자신의 천생연분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나는, 감정 조절 안 되고 좋으면 좋으대로 다 퍼주는 타입. 꼭 그래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러다보니 결과는 죄다 꽝이었다. 먼저 지치는 건 상대가 아닌 나였다. 헤어지자고 말을 꺼내는 것도. 그렇다고 이별 후에 아무렇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이유야 어쨌든 흠뻑 빠져 있던 곳에서 누가 나오고 싶을까. 면발처럼 기다랗고싶은 내 감정은 아작아작 씹혀 사라지곤 했다. 경미한 상처들이 켜켜이 쌓였다. 거쳐온 모든 이별들이 나를 점점 쪼그라들게 했다.


-이홍 '걸프렌즈' pp.71~73 에서 발췌 (글꼴 굵기 강조는 저자 강조)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속 컨텐츠

다니엘 페나크 '소설처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북중국의 연인' ; 연인 3부작
파트릭 모디아노 '서커스가 지나간다', '잃어버린 거리'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렉싱턴의 유령' (;'토니 타키타니', '얼음 사나이')
존 란체스터 '아주 특별한 요리 이야기'
앨빈 토플러 '제 3의 물결'
마르쿠스 베르너 '아버지의 연인'
로맹 가리
밀란 쿤데라
무라카미 류
알베르 카뮈
와타야 리사 '인스톨', '차버리고 싶은 등(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에쿠니 가오리 '반짝반짝 빛나는', '낙하하는 저녁',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가네시로 카즈키 '레벌루션 no.3'
파스칼 키냐르
애거서 크리스티
카롤린 봉그랑 '밑줄 긋는 남자'
구효서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프랑수아즈 사강
요시모토 바나나
루이제 린저
잉게보르크 바흐만 '죽음의 방식'
아나이스 닌
미시마 유키오
스콧 피츠제럴드
버지니아 울프
제인 오스틴
루이자 메이 올콧 '작은 아씨들'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머리 앤'
마갈리 가르시아 라미스 '일주일은 칠일'
강석경 '숲속의 방'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억의 천재 푸네스'
폴 오스터 '달의 궁전', '브루클린 풍자극',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아멜리 노통 '살인자의 건강법'
마르크스, 그람시, 헤겔, 엥겔스, 데리다
르 클레지오 '황금물고기'
레몽 장 '오페라 택시', '책 읽어주는 여자', '카페 여주인'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코라 휩시 '여자, 전화'
배수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김영하 '포스트 잇'
쉼보르스카 '여인의 초상'
루이스 세풀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 '핫라인'
에단 호크 '웬즈데이'
미셸 투르니에
장 에슈노즈
레이먼드 카버
커트 보네커트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워터멜론 슈가에서'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유하
'늦어도 11월에는'
더글러스 커플런드 '신을 찾아가는 아이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구스타프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야마다 에이미
시모 '릴라는 말한다'
주느비에브 브리작 '나는 아무 것도 먹고싶지 않아'
소동파 '마음 속의 대나무'
타일러 코웬 '상업문화예찬'
알베르토 모라비아 '우리는 투스카니의 별장에서 이십 일을 보냈다'
안톤 체호프
'양을 세며 잠드는 책'
아고타 크리스토프 '50년간의 고독'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윌리엄 셰익스피어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최승자
코니 팔멘 '자명한 이치'



왕가위 '해피투게더', '아비정전'
빔 벤더스 '밀리언달러 호텔', '베를린 천사의 시'
'정사(Intimacy)'
'정사'
'밀레니엄 맘보'
'밝은 미래'
'리얼리티 바이츠 (Reality Bites, 국내 개봉 청춘 스케치)'
'귀여운 여인'
'첫키스만 50번째'
'21그램'


진 세버그, 장만옥, 서기, 장국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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