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 '고령화 가족', 문학동네, pp.252~253
-술술 잘 읽히는 경쾌한 문체. 비슷하다면 이기호와 비슷한가? 그러나 나는 천명관 작가의 스타일이 좀 더 취향.
경쾌한 문체 아래 비루한 '고령화 가족' 성원들의 따스한 면면이 유장하게 흐른다.
<원앙>
"마미 짱은 바보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겉모습만 그럴듯하고 내용은 없는 부부라고 생각하지?"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내는 그녀를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겉을 꾸미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고 말아. 형태를 만들어놓으면 내용은 나중에 따라올지도 모르잖아.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부부도 있는 거라고."
마치 스스로를 타이르듯이 말하더니 올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 앞에서 문이 천천히 닫혔다.( p. 103)
<마스오>
어쩌면 슈지는 내가 느끼고 있는 만큼 지금의 생활을 행복하게 느끼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늘 똑같은 우리의 일상이 나와 남편에게 전혀 다른 색깔로 비춰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이 오싹해졌다. 어금니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남편이 진정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고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회사도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미망 따위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고민이 없을 것 같고 낙관적이고 느긋해 보이는 슈지를 남편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서웠다. 남의 집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남편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말로 무서웠다. (pp. 159~160)
<지혼식>
우리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고 싶었지만 두 사람 역시 그렇게 다른 인간들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토록 바랐던 생활을 손에 넣게 되자 차츰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신혼 때는 늘 서로 엉겨 붙어서 노닥거렸지만 점점 배우자인 상대에게는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게 되었다. 이게 평범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상대의 일과 친구 이야기를 그다지 흥미롭게 듣지 않게 되었다. 고민을 털어놔 봐야 적극적으로 상담을 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말하지 않게 되었고, 둘이 외출해도 즐겁지 않았다. 휴가를 맞추는 번거로움도 포기했다.
이렇게 어긋나는 일들이 늘어난 지 꽤 오래되었다. 외롭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의 얼굴을 본다면, 이야기를 한다면, 섹스를 한다면 외롭지 않은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남편은 이미 나의 일부이다.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함께 있어도 외로웠다.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타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pp. 266~267)
-이상 야마모토 후미오 단편집 '지혼식'에서 발췌, 김미영 역, 창해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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